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천문 지리가이며 최고의 예언가였던 격암 남사고.
그는 개인의 길흉화복뿐 아니라 선조의 늑위, 사림의 분열, 기축옥사, 임진왜란 등
당대 국가적 대소사를 정확하게 예측하면서 그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또 그가 남긴 저서는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며 세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후세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하늘은 스스로 탐구하는 자에게
'비결'을 알려준다. 남사고는 중종 4년인 1509년 울진군 근남면 수곡리 누금마을에서
이조좌랑을 지낸 남희백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격암이 살았던 당시는 국정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도 있듯이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남사고는 스스로 학문을 연마하며 성장해 갔다. 특히 효를 기본으로 하는 소학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평소 말하고 웃는 것이 간결하면서 온화했다고 전해진다.
조선후기 학자 이재는 격암을 소개하는 '남격암유적'에 아래와 같은 기록을 남겼다.
"격암 남공 사고는 어려서부터 뜻을 견고하게 세워, 대강대강 공부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일찍이 길을 가다가 길에 붉은 실로 맨 패도가 버려져 있었는데 돌아보지도 않고 가벼렸다.
공이 평생 동안 행돋을 절제함이 모두 이러한 것이었다.
집에서 어버이를 섬김에 효도를 다하였고 인척 간에는 화목도 돈독하게 지냈으며,
사람들과 교유함에도 온화하여 오만하지 않았다."
격암의 사상과 행적을 글마루 12월호에서 발췌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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