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咸平) 이씨 좌찬성 이관(李瓘)과 아들 이효원(李效元, 1549∼1629, 호:長浦)을 향 사하는 ‘ㄱ’자 건물이다. 『함평세가(咸平世家)』에 따르면, 1668년에 이해(李 , ?∼ 1670, 호:聾翁)가 건립하였고 1882년에 고쳐지었다. 이관은 함평 이씨가 청양 지역에 처음 들어온 시조이고, 이효원은 선조 말년 대·소북 의 정권 쟁탈이 치열할 때 소북의 입장으로 대북이 집권하면서 거제도(巨濟島)에 유배된 인물이다.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이곳에서 청빈한 생활로 산수를 즐기며 일생을 마쳤다. 이 건물을 세운 이해는 광해군 때 아버지 이효원이 유배되고 형 이정(李瀞)이 울분을 참지 못하고 죽자 벼슬을 단념하였다.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에 올랐고 함릉부원군(咸陵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충정(忠靖)의 시호를 받았다가 숙종 때 충민(忠敏) 으로 다시 시호를 받았다. 재실 4칸, 협문 1칸, 곳간 2칸, 행랑채 9칸으로, 건립되어 330여 년이 지났으나 건립 당 시의 원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뒤쪽에는 이관과 이효원의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