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뜨거운 현장을 기록하다.
답사기 작성일 : 2014년 8월 25일
한국인의 입맛을 책임지는 청양고추의 고장 청양에서는 매해 여름,
청양고추만큼 매력있는 축제의 장이 펼쳐진다.
어른과 아이, 전통과 새로움이 함께하는 청양의 고추구기자축제로 가보자.
세상에는 많은 축제가 있다. 그리고 나는 축제를 좋아한다. 축제에 가면 맛있는 음식과 신나는 음악, 행복한 사람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파묻혀 있으면 나이는 잊고 어린애 마냥 신나게 노는데 집중할 수 있다.
축제에는 종류가 참 많은데 내가 고추축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은 3년 전 여름이었다. 우연히 이탈리아 남부 작은 마을에서 고추축제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된 모습이 좋았다. 빨갛고 커다란 고추모형과 고추를 그린 포스터가 있을 뿐 그다지 고추를 강조한 다른 부분은 없었으나 소박하지만 열정적인 사람들의 모습에 강한 인상이 남았다. 내게 고추축제는 작은 마을사람들의 축제를 향한 행복하고 강한 열정이다.
그리고 올해, 청양에서 고추구기자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청양으로 향한다.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멀지않은 홍성이나 광천을 운행하는 버스 중에는 구기자처럼 귀엽고 앙증맞은 버스가 있다. 운이 좋게 이 버스를 타니 기사님이 축제에 가는 거냐며 환하게 반겨주신다. 푸른 하늘과 논밭, 넓진 않지만 정겨운 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청양에 들어서고 있나보다. 누가봐도 여기는 청양이다. 가로등이 모두 고추로 되어있다. 구기자로 되어 있는 가로등도 있다. 청양은 정말 귀엽다.
축제가 열리는 청양시장 쪽을 향하니 벌써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하늘에는 커다란 풍선과 현수막이 떠있고 흥겨운 농악과 함께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개막식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흥이 난다. 청양 주민뿐 아니라 이웃하는 곳에서도 축하해 주기 위해 퍼레이드에 참가한 건지 다양한 행렬이 이어진다. 고추와 구기자인형을 온 몸에 주렁주렁 달기도 하고 각자가 농사짓는 사진이 인쇄된 옷을 입고 장구와 북을 치며 개성 있게 입장한다.
관계자들의 인사말이 끝나고 밤하늘에 펑펑 터지는 불꽃으로 3일간 축제의 서막을 알린다. 벌써 15회를 맞는 청양고추구기자축제는 횟수만큼 알차고 다채로운 행사들로 가득하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무대에 오르는 공연자들도 다양하다. K-POP 퍼포먼스, 학교별 장기자랑 을 통해 10대들의 재기 발랄한 솜씨를 보여주고, 주민자치센터, 사회인 동아리 공연에선 그동안 갈고 닦은 조화로운 퍼포먼스로 무대를 채운다. 뿐만 아니라 충남음악페스티벌에서는 유명오케스트라의 공연과 정통인디언 음악가들의 무대도 볼 수 있어 눈과 귀가 즐거워진다.
장기자랑 을 통해 10대들의 재기 발랄한 솜씨를 보여주고, 주민자치센터, 사회인 동아리 공연에선 그동안 갈고 닦은 조화로운 퍼포먼스로 무대를 채운다. 뿐만 아니라 충남음악페스티벌에서는 유명오케스트라의 공연과 정통인디언 음악가들의 무대도 볼 수 있어 눈과 귀가 즐거워진다.
물론 유명한 가수들의 무대도 놓칠 수 없다. 임주리, 이용, 전영록 등 베테랑 가수들과 인기뮤지컬 '비밥'이 초대되어 무대를 빛낸다. 뽀빠이 이상용 아저씨가 진행하는 ‘그 시절 그 노래’ 공연은 초대가수들의 무대와 맛깔나는 입담으로 장내가 후끈 달아 오른다. 그 중 초대가수 임주리의 무대가 인상적이다. 부모님이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아주 좋아하셨는데 그래서 덕분에 나는 수없이 반복해 들었었고 아직도 가사를 몽땅 알기에 열심히 따라 부른다. 붉은 립스틱과 청양고추, 구기자... 나름의 의미가 있는 캐스팅이다. "내일이면 잊으리, 또 잊으리~" 내일은 잊고 신나게 놀자. 축제니까.
메인 행사 중 가장 기다리던 건 '구기주 마시고 해머치기'. 직접 참가하고 싶었지만 도착하니 이미 시작해서 아쉽지만 구경만 하기로 한다. 어차피 저분들 사이에서 내가 이길 확률은 전혀 없어 보인다. 다들 건장한 청년 혹은 아저씨들이다. 구기주를 한잔 마시고 코끼리 코로 세 바퀴 돌고 망치로 힘껏 기계를 내려친다. 가장 세게 쳐서 기계의 수치가 높게 올라간 사람이 승리. 다들 얼굴이 빨갛게 술이 올라 힘껏 망치를 내려치는게 사뭇 진지하다. 우승한 분은 천하장사 부럽지 않게 함박 웃음을 지으며 기뻐하신다. 구경하던 사람들도 패자들도 모두 힘껏 박수를 치며 축하한다.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광고 문구가 생각난다. '승리의 룰은 단 하나, 즐기면 된다' 재밌다.
청양 최고의 농산물을 내세우는 축제답게 농특산물 깜짝 경매도 3일내내 이어진다. 질 좋은 고추, 구기자 등을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다. 김장을 대비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이다. 청양의 고추는 빛깔부터 남달라 나도 이제 중국산 고추들 사이에서 확실히 골라낼 수 있을 것 같다.
공연 뿐 아니라 페이스페인팅, 구기자 족욕, 솟대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와 물고기잡기, 축제사진콘테스트 등의 이벤트도 함께한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에서 무언가를 만들거나 신기해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기고 있다. 생각보다 어린아이들은 집중력이 좋아서 무엇이든 금세 따라 하고 그럴듯하게 만들거나 해낸다.
넓은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는데 세계의 다양한 고추와 구기자를 비교해 전시해 놓았다. 들어가보니 청양고추로 만든 술을 시음해 볼 수도 있는데 관계자 분의 주의를 무시하면 안된다. 태어나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나는 땀이 잘 나지 않는다. 어지간히 심한 운동을 하지 않고서야 얼굴에 땀이 흐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청양 고추주를 한잔 원샷 하자마자 땀과 눈물이 샘솟는다. 관계자 분은 경고를 무시한 나를 안쓰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찬물을 주시며 위로해 주신다.
축제장 곳곳을 거닐며 둘러보는데 반가운 얼굴들이 있다. 작은거인 예술단. 몇 달 전, 인간극장을 통해 인상 깊게 본 후 꼭 직접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이곳에서 마주치다니 굉장히 반갑다. 어르신들이 많이 앉아 계시는데, 그들이 하는 이야기와 노래에 귀 기울이며 모두 큰 소리로 깔깔깔 재미있어 하신다. 가까이서 공연을 보니 TV에서보다 더 예쁘고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 어쩜 이렇게 입담이 좋고 재주가 좋은지 한시도 눈과 귀를 뗄 수가 없다.
공연장을 나오면 먹거리들이 즐비해 있다.추억의 도시락, 각종 전과 막걸리, 뽑기, 호떡, 아이스크림 등 보기만 해도 신이 난다. 추억의 도시락을 흔들어 비비고 함께 나온 오이냉국과 함께 허기를 달랜다. 그리고 청양고추 전에 구기자와 각종 약초를 넣어 만드셨다는 동동주를 한 모금 마시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 노랫소리를 들으면 휴식마저 즐겁다. 후식으로 청양고추로 만든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청양 고추빵을 먹으며 축제를 즐긴다.
웃다리 농악시연으로 사람들의 흥을 한곳에 집중시킨 뒤 바로 이어 달집 태우기로 축제의 대미를 장식한다.청양시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달집에 불을 붙이고 밤하늘에는 불꽃이 터진다. 사람들은 각자 들고 있던 색색의 풍선을 놓고 불꽃과 함께 밤하늘을 장식한다. 꽹과리와 장구 등으로 흥겨운 농악이 울려 퍼지며 사람들은 축제의 마지막 흥을 함께한다. 활활 타오르는 달집을 중심으로 준비된 떡과 막걸리를 즐기며 춤을 춘다.
요즘 페스티벌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에는 대부분 젊은이들이 주가 되어 있다.그럴 수밖에 없는게 음악도 음식도 분위기도 어르신들이 즐기기에는 너무 빠르고 낯설고 어렵다. 음식도 꽤 비싸다. 그 나름대로의 재미와 신선함이 있지만 가끔은 이런 푸근한 마을 축제가 좋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어울릴 수 있고 특유의 역사와 전통이 함께해서 좋다. 한국의 세계화라고 하며 세련되게 꾸민 가야금 연주자, 가요와 융합한 농악 등도 재밌지만 그 자체로 사람과 삶에 녹아들어 있는 지금 순간이 감동적이고 좋다. 사그러가는 달집과 함께 축제는 내년을 기약하며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