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조 때의 무관(武官) 박신용(朴信龍) 장군에게 조정에서 내려 주었다고 전하는 유의(遺衣)를 보관한 곳으로, 1885년(고종 22년)에 후손들이 건립하였다. 장군(1575∼1627)의 호는 택수(澤 ); 본관은 죽산(竹山)이고, 황해도 백천(白川) 출신으 로 세 살 때부터 이곳 외가(外家)에서 성장하였다. 1618년(광해군 10년)에 무과에 급제하 여 1627년(인조 5년)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선전관(宣傳官)으로 의주(義州)에서 후금(後 金)과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이에 공훈을 포상하고자 관복(官服)을 하사하였다. 유의각에 봉안된 유의는 단령(團領)·청천익(靑天翼)·홍천익(紅天翼)·전복(戰服) 등 4점이다. 이러한 사실을 새긴 비(碑)를 세웠는데, 비문은 이설(李楔)이 지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지붕이며 주위에 담장을 둘렀고, 출입문은 1731년(영조 7년)에 건립한 충 신 정려문으로 3칸의 솟을대문이다.